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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승탑역사순례2(2026.4.18) : 편운화상탑과 후백제

다시산내댁 2026. 5. 16. 20:51

 

두번째 승탑역사순례는 편운화상탑과 후백제

시대적으로 통일신라말기, 후백제 후고구려가 생겨나는 시기에 실상사는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자료나 기록은 별로 없지만 실상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신 진정환선생님(국립경주박물관 근무)을 모시고 후백제시대의 상황과 실상승탑에 대해 알아본다.

 

편운화상탑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편운화상탑에 조각되어 있는 "홍척제자안봉창조 편운화상 정개십년경오세"라는 문구에서 시작.

"정개"라는 단어는 후백제시대의 연호라고 추정되며 경오년은 911년에 해당되고, 900년에 후백제라 칭하였지만 정개라는 연호는 본격적인 영토확장에 나선 901년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론. 정개10년, 911년 경 실상사는 후백제의 영향력하에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



 

후백제 상황에 들어갑니다.

후백제는 36년의 짧은 기간동안 견훤에 의해 통치되었던 나라입니다

견훤는 신라 상주에서 태어나 신라군대의 직책을 가지고 경주 활동, 무진주(전라도 광주) 진압등의 무인으로서 활동을 합니다. 892년 무진주에서 스스로 권력을 잡고 900년에는 전주로 옮겨 백제를 잇는다는 뜻으로 후백제라 칭하게 됩니다.

 

백제가 멸망한지 250여년이 지났지만 백제의 기억을 가진 전주를 근거로 견원은 본격적인 세력확장에 나섭니다.

백제 의자왕시절 함락시켰던 대야성(신라김유신 사위가 성주)을 901년 공격하여 백제 승리의 기억을 소환하려하였으며 실패하고, 마한의 뿌리가 강해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궁예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금성(나주)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합니다. 그리고 상주와 문경, 김천등 경상북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920년에는 대화성을 함락하면서 백제 계승을 완성하고 대내외적으로 후백제를 인정받습니다.

922년에는 일본과 외교관계 복원을 요청하고, 후당에게서도 925년 백제왕으로서 책봉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신라왕궁장악을 준비합니다. 신라의 강주와 양주를 공략하고 조물성을 공격하여 낙동강 상류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927년에는 드디어 경주로 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세웠으며 신라의 지원요청으로 경주에 온 고려왕건과의동수전투에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그 후 929년에는 나주도 탈환하게 됩니다.

 

 

편운화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홍척스님의 제자이고, 안봉사를 개창하셨다라고 승탑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편운스님은 실상사에 계속 머무르셨던 것이 아니라 대구 인근의 성주에 가서 자신만의 산문을 개창하셨던 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수철화상탑은 신라왕의 후원을 받아 905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시대적으로 후백제 점령시기일 가능성이 높아서 이는 실상사내에서 친신라적인 입장과 친후백제적인 입장이 동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상사 외곽에 모셔져 있고, 단순하게 승탑이 만들어 진 것은 당시의 정치적 입장과 연결시킬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실상상문의 어떤 정치적 성향 이런 것들 때문에 후백제로 갈아타기보다는 주도 세력은 친신라적 성향을 전시하고 그것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