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가유산청과 지방자치에서 지원하는 산사문화재활용사업 중 하나.
실상사 승탑역사순례.
실상사 승탑의 주인공들이 기록이 거의 없거나 희미한 상황에서
다섯번에 나누어서 그 시대의 역사와 상황을 보며, 스님들을 그려보는 시간으로 하였다.
첫번째 시간은 실상사를 개창하신 홍척국사와 그 제자 수철화상 탑과 탑비
우석대 주수완사학과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듣다
강의실에서
승탑에 어떻게 만들어지게되었는지
홍척국사와 수철화상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불교미술사적으로 본 승탑에 대해 이야기듣고 현장으로 가서 이야기하다.
< 승탑은 왜 만들어졌을까 >
승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 불탑이라는 것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을 믜미합니다. 오랫동안 부도탑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의미를 분명히 하고 용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승탑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탑"은 사리를 의미하는 "스투파"라는 인도말에서 한자로 바꿔서 솔도파, 도파,투파,타파,탑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원래 귀족이나 천민이나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강물로 떠나 보내 흔적을 없애버리는 것이 최고의 장례법입니다. 이것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지금도 많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투시나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열반하시면서 '탑을 만들고 투시나가 마을에 장례를 맡기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탑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시공덕을 할 기회를 주라는 의미로서 누구나 부처님에게 음식공양을 할 수 있게 되고, 스님들은 그 공양으로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겠지요.
'나한테 밥을 주고 싶었던 사람들은 내 스투파 앞에다가 밥을 놔두면 이게 곧 내가 살아있을 때 나한테 밥을 준 것과 똑같은 공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 밥을 드리고 싶었던 사람들은 이후에는 스튜파 앞에다가 밥을 갖다 놓게 됩니다. 결국은 부처님께 뭔가 공양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부처님이 떠나신 다음에도 대신에 공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런데 그 밥은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은 제자분들이 다 걷어가서 드십니다.
그런 면에서 부처님은 제자분들이 밥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까지 다 해결해 놓고 열반에 드신 ...'부처님은 대단한 CEO였다' 라고 경영학부 교수님다운 해석을 하십니다 ~
< 승탑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부처님 탑만 만들다가 통일신라 후기로 가면서 스님들의 답도 세우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선종"이라 불교가 들어오면서 스님에 대한 예우가 각별해지면서 승탑을 세우게 됐습니다. 사실은 탑을 세운다는 것은 스님을 부처님급으로 볼 수 있다는 거지요.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는 게 선불교다. '
소승불교라고 하는 지금은 이제 잘 쓰지 않지만 상좌부 불교나 부파불교, 원시불교, 상좌부 불교 대승불교 등 불교가 변화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거쳐 대승불교가 들어오게 되지요. 그리고 통일신라 후기에는 선종도 들어오게 되어 널리 펴지고 산문도 형성하게 됩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소승이라고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만 타는 수레이고, 자기 혼자의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이고 대승이라고 하는 거는 다 함께 깨달음을 얻읍시다라고 하면서 이제 많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수레다 이런 뜻입니다.
스님도 부처님이 될 수 있고 우리 같은 일반 속세에 있는 재가신도들도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가르침으로 나아가는 게 대승 불교입니다. 대승불교라고 하는 거는 이렇게 부처가 되는 걸 목표로는 삼지만 너무나 큰 목표이기 때문에 그냥 처음부터 기가 죽어서 지금은 이번 생은 안 돼. 이번 생은 실패고 다음 생 그다음 생 언제쯤인가는 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거기서 바로 이번 생애에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라고 하는 선종이 등장합니다. 멀리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정말로 “즉심시불” 내가 부처다라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처 되기를 미루지 말고 어떻게든 지금 부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내가 부처가 되는 걸까 ... 결국은 너무 거창하게 부처님이 된다라는 생각보다도 진짜 나의 모습,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건 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거는 뭐고, 내가 정말로 의미를 두고 있는 거는 뭐고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는 거 ...그것부터가 참 나를 찾는 거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부처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스님이 수행을 하셔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처럼 열반에 드셨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부처님께 사리탑을 세워 드리듯이 스님의 사리탑도 세워드리자는 신념으로 승탑을 만들어 가는 기반이 되었을 것입니다.
< 홍척국사와 수철화상에 대하여>
실상사는 구산선문 최초가람.
그 실사사를 창건하신 홍척국사는 태어나시고 돌아가신 연대는 알수 없고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시기가 826년 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선종의 8대조 마조도일의 제자이신 서당 지장스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서당 지장스님께 배운 분은 이 홍척국사뿐 아니라 조계종의 종조로 알려진 도의선사도 지장스님에게 오랫동안 배움을 받았습니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서 821년 귀국하시어 홍척국사보다 먼저 귀국하였으나 당시엔 선불교에 대해 왕실도 대중들도 잘 알아주지 않아 강원도 양양 진전사라는 곳에서 은둔하며 수행을 하시다가 염거화상이라는 제자를 만나게 되고 그 제자가 가지산문을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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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척국사는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실상사를 중심으로 실상산문을 열고, 신라왕실의 초청으로 경주에 가서 흥덕왕과 선강태자에게 설법을 하고 흥덕왕과 선강태자을 귀의시키고 선종을 인정받게 됩니다.
홍적국사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데 최치원이 글을 쓴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를 보면 “도의선사는 무념무수( 無念無修)를 가르치셨고 홍척국사는 몰염몰수(沒念沒修)를 가르쳤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몰염몰수는 행을 하고 정진을 하는데 정진을 하지만 정진함이 없고 수행은 하지만 수행함이 없다. 수행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수행이다. 어떻게 보면 이 경계를 내가 불교에서 내가 왔다는 게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확대되는 개념입니다.
몰이랑 무를 굳이 구분을 해보자면 무라고 하는 거는 무의 판단이 있고 없고에 대한 구분이 있는 것이고, 몰이라고 하는 거는 있고 없고라는 것 자체의 경계를 또 허물어버리는 거지요.
미묘한 차이지만 한자의 뜻으로 본다면 이 몰자라고 하는 것은 어떤 수행과 참선이나 이런 거에 경계를 허물어버린다라고 하는 뜻에서 홍척국사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었는가 좀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척국사의 제자이신 수철화상은 비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는 수철화상이 입적하신 통일신라 시대 때 비가 아니고 그 비가 없어졌고 그 비에 대한 내용이 내용은 남아 있어서 조선시대 1714년에 그 남아 있었던 수철 화상의 비석의 기록을 그대로 다시 새긴 것인데 이것도 많이 마모가 돼서 내용을 완벽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 탑비에서는 중요한 내용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수철화상이 홍척국사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와서 홍척국사가 수철화상에게 “너는 어디서 왔는가” 라고 물었더니 수철화상이 심원사에서 왔습니다라고 한 게 아니라 “스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면접 시험에서는 떨어지기 딱 좋은 대답입니다. 물어봤는데 대답은 안 하고 또 물어보시는 거예요.
여기서 보면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는 거는 그 본원 근원을 묻는 거지요.
어디서 왔어라고 물어봤을 때 그냥 출발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출발지를 근원으로 따라 올라가다 보면은 결국은 나의 본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내가 어디서 왔다 그러면은 보나 마나 이 스님은 그래 너는 고작 거기서 왔느냐라고 할까 봐 그걸 미리 알고 스님의 본성은 스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결국 그걸 물어보시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하는 차원에서 스님의 본성, 스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 선문답이라는 게 좀 어렵죠. 스승님이 질문을 하시면 답을 할 때 내가 답을 하면 스승이 다시 뭘 물어보셨어요? 그러면 그걸 물어본 걸 내가 이런 식으로 답을 하면 또 이렇게 하고 이제 결국 스승님은 나한테 이러이런 걸 유도해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시는 거구나 이런 답을 원하시는 거구나 하고 자기가 그걸 건너뛰어서 답을 하는 거예요.
실제로는 계속 그걸 얼마나 더 근원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스승님이 물어봤을 때 그냥 딱 나오는 답이 아니라 내가 뭘 물어볼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구나라는 걸 이제 볼 수 있는 게 그런 선문단입니다.
그래서 홍척국사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수철화상은 상당히 명성을 얻게 됐을 때 신라왕실 경문왕이 불러 “교종과 선종의 차이점은 어떻게 다릅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이 수철화상은 선불교의 스님이셨지만 화엄과 선불교 어느 게 더 나은 겁니까? 왜 선불교가 더 좋다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수철 화상의 답은 어느 게 더 좋고 나쁘고가 아니고 두 개가 같이 이렇게 바탕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뭔가 미로 이야기를 하십니다.
미로 이야기는 의상 스님이 만드신 화엄일승법계도와 연결되고, 미로는 쭉 가서 결국은 하나의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곳이다. 화엄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데 미로를 설명하고 선종은 그 미로를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길을 다 지워버리면 그냥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이렇듯 수철화상은 이런 화엄불교와 선불교를 같이 이렇게 접목한 그런 사상을 가지셨던 분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불교미술사의 관점으로 탑을 알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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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 부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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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선사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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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의 기원을 찾아가자면 중국 서안 초당사라는 곳에 있는 구마라집스님의 부도탑이 거의 지금의 형태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라마집스님은 중국불교의 초기에 많은 인도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신 위대한 역경 스님이십니다. 역경이라고 하면 이분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한분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계십니다. 근데 두 분의 번역 스타일은 많이 다릅니다.
구마라집 스님이 더 훨씬 앞선 스님이셨고 이 분은 주로 의역을 하신 반면 현장 스님은 직역을 하셨다는 것이 다릅니다. 이 구마라집 스님의 중국어 번역은 중국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읽을 때 마치 정말 인도 원전처럼 리듬감이 있게 읽고 외울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인도의 경전에 보면 리듬감, 운율이 중요한 데 구라마집은 중국어로 리듬감이 느껴지게 번역했다는 거예요.
이 구라마집스님의 부도탑이 미술사적으로는 이게 우리나라 승탑의 기원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세워진 스님탑은 양양 진전사에 있는 도의선사의 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의선사탑은 아래 부분은 탑하고 똑같이 생겼어요. 그 위에는 원당형이며 팔각형의 건물 형태로 되어 있어 부처님탑과 구분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 지낼 때 집 모양으로 된 박스에 문을 열 수 있게 하고,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 있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도의 선사 다음 만들어진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승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염거화상탑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수철 화상 탑이랑 거의 똑같습니다.
그런데 염거화상이라는 분은 도의선사 제자이고, 수철 화상은 홍척국사 스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2세대 선종 스님들의 승탑 모양이 똑같은 거죠.
왜 이렇게 똑같으냐 하는 것이죠. 이걸 좀 풀어나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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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거화상탑 | 홍척국사탑 | 수철화상탑 |
수철화상탑부터 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팔각 땅에 사당같은 건물이 있고 문도 달렸습니다.
* 하대석 : 아래쪽에는 물결 치듯한 조각. 그 위에 사자 같은 무늬;
대부분의 승탑이 맨 아래는 바다 그리고 그 바다의 파도를 역동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아직은 카오스,혼돈의 세계를 지나서 위로 올라가면 땅으로 올라와서 사자와 같은 동물들이 사는 세계, 자연의 법칙이 생명의 법칙이 있는 그런 세계로 올라갑니다. 그게 중간단계.
* 중대석 : 여기에는 향로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자연을 넘어서서 뭔가 더 위로 더 상승하기 위한 인간의 어떤 종교적인 영혼 이런 거를 향로로 표현합니다. 여러 종류의 향로가 표현이 돼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는모습으로 표현 됩니다. 그 주변에는 향만 피워놓은 게 아니라 음악을 연주해서 경건함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음악이나 동영상 같은 것을 너무 많이 보고 듣기 때문에 실제로 움직이고 실제로 들리지 않으면 우리한테는 움직임도 안 나고 소리도 안 나지만 옛날에는 그게 없었기 때문에 움직임을 어떻게 상상하게 만드느냐 소리를 어떻게 상상하게 만드냐 하는 점이 작품들에게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상상하게 만드는 거지요.
* 상대석
가운데 부분은 상다리 모양. 이렇게 볼록볼록하게 돼 있죠.
다리가 직선으로 앉아 있고 그 위에 연꽃 모양으로 뭔가 성스러운 기운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이 위에 올라가 있는 사당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이 받침대 위에 올려 놓거나 한칸을 비워 놓아서 사이를 떼어놓았습니다.놨다는 거예요.
* 탑신
탑의 본체입니다. 여덟 면인데 보통 앞뒤로 문이 달려 있습니다.
이 문은 그냥 무덤이 아니라 이 분이 그 안에 들어가 계시는 하나의 집 개념이에요.
불교에다가 뿌리 깊은 동양의 유교적인 사상, 제사 이런 생각이 결합이 되면서 돌아가신 분에 대해 지내는 제사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사를 지내면서 차를 드리거나 뭔가 공양을 드릴 때 이 문을 통해서 돌아가신 분의 어떤 혼이 나와서 우리가 드리는 차나 향이나 이런 것을 흠향하실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이 분은 돌아가셨지만 정신적으로 우리와 계속 연결돼 있다라고 하는 거를 강조하기 위해서 문이 달려 있습니다. 두 면은 비어 있고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을 모셨습니다.
이 안에 있는 분을 호위하고 지켜드리는 거여서 그 칼을 이렇게 차고 있거나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지붕 밑에는 역시 비천들이 막 날아다니는 근데 불교나 동양에서는 비천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천사라고 하죠. 실제로 천사가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입적하신 스님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때 천사들이 마중 나와요.
모시러 갈 때 이 여덟 면에서 천사들이 쭉 가운데 둘러싸고 있는 거는 이 스님을 모셔가기 위한 것으로 극락세계로 가셨다라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비천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수철화상보다 더 스승이신 홍척국사의 증각대사응료탑은 원칙적으로는 수철화상보다 먼저 만들어졌어야 하고 양식도 수철화상탑보다 더 오래된 양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면 기본적으로는 비슷합니다. 아랫 부분을 보면 아래도 역시 이렇게 물과 구름 이런 것들이 섞여 있는 혼돈의 세계 카오스의 세계가 바닥에 깔려 있고요.
근데 여기 특이한 게 홍척국사탑에서는 이 위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에요.
보통 미술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여기와 여기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말하자면 비워놓은 걸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단계를 건너뛰어서 엄청나게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 때 이렇게 그런 빈칸을 써요.
그 위에는 질서 있는 세계 즉 카오스의 세계에서 빈 차원을 뛰어넘어서 이제 코스모스 질서의 세계로 나아간 걸 보여 줍니다. .그 위에는 여기에도 많은 신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 팔부신장이라고 하는 역시 부처님을 호위하는 이런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를 가리킵니다.
홍척국사탑에서는 자세히 보면 조각이 조금 평면적이고, 생김새를 보면 만화같은 캐릭터화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수철화상탑에 있었던 사천왕이나 비천의 모습에 비교하면 조금 후대의 스타일로 가요. 수철화상탑은 조각이 입체적이에요. 근데 이거는 입체적이 아니라 판판하고 선을 뚜렷하게 만들어서 평면적으로 만든 조각 구조에 가깝습니다. 수철화상탑은 입체적인 조각이고 총척국사탑은 훨씬 더 조각이 얕은 선각에 가까운 그런 조각이라는 점이 차이점이에요.
다양한 자세를 하고 있는 팔부신장들이 8개가 있고, 그 위에 연꽃도 있는데 이 연꽃도 아까보다 훨씬 규칙적이고 모양이 좀 딱딱합니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도식화되었다라고 할 때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상 다리 같은 걸 만들어서 살짝 띄워놨는데 홍척국사탑에는 부분이 굉장히 확대돼 있어습니다. 이런 책상 다리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별도의 기둥까지 세워지면서 이 부분을 유독 강조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들도 초기 스타일이 아니고 약간 시대가 지난 다음에 나타나는 장식적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문을 보면 홍척국사탑에는 아예 자물쇠도 있습니다. 문고리도 있고 이 위에 꽃무늬도 있어서 저 당시에 문을 어떻게 만들었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는데 굉장히 정교하게 공예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 문 옆에는 역시 두 칸이 빈칸이고 네 면에 사천왕상있는데 수철국사의 사천왕에 비해서 역시 평면적이고 납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 주변을 좀 파낸 다음에 선으로 세부 묘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거 역시 입체적인 수철화상탑에 비해서 조금 나중에 등장한 표현 방식이라는 걸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얼굴 표현이나 이런 걸 보면 해학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지붕을 보면 실제 목조 건축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것처럼 만들어서 단단한 돌인데도 정교하게 깎아서 마치 나무서까래를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보았을 때 이 탑도 굉장히 훌륭한 탑인데 다만 수철화상탑 상태에 비하면 더 장식적이고 모양이 딱 어떤 틀에 들어가 있는 규범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 혹시 두 탑이 서로 바뀐 것이 아닐까라고 추정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홍척국사 스승의 탑과 제자 수철화상의 탑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수철화상탑이 훨씬 더 장식적이고 연꽃 모양도 여기는 좀 부드럽게 퍼져 있는데 홍척국사탑은 되게 딱딱한 연꽃 모양이죠.
실제로 탑의 흐름을 보면 조각 있어서도 수철 화상 탑의 사천왕상이 더 실제 조각이고 입체적이고 실제 팔의 조각에서도 더 튀어나와 있습니다. 홍척국사탑은 거의 윤곽선을 따라서 선을 쪼아서 만드는 선각이고 팔다리 같은 곳도 거의 평면입니다. 그래서 양식적으로 보면 제자의 탑인 수철화상탑이 더 오래된 조각 양식을 보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도의선사탑에서 이 수철화상 탑이라고 알려진 탑으로 오는 거 사이에 이렇게 단순한 거에서 복잡해졌다가 다시 단순한 걸로 간다. 이 순서가 잘 맞지가 않는 거 그래서 이 부분의 탑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염거화상 탑은 844년 그런데 수철화상탑은 893년에 50년 뒤에 만들어졌다고하는데 비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홍척국사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지만 826년에 신라로 돌아오셨고 최소한 830년대까지는 실상사에 계셨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837년에 원감 현욱이라는 스님이 실상사에 계신 흥척 스님을 만나 뵈러 왔답니다. 그래서 837년 그 후에 입적하셨다면 염거화상과 비슷한 무렵에 입적하셨으니까 그러면 시기가 맞는 거죠.
물론 세대로 보면 도의선사와 홍척스님이 같은 1세대고 그다음 염거스님과 수철스님이 2세대지만 실제 연대를 보면 1세대인 홍척스님이 입적하셨을 때와 가지산문의 2세대인 염거화상이 돌아가셔서 시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수철화상탑과 홍척국사탑을 바꾸면 흐름이 맞추어집니다.
그러나 아직 조심스러운 것은 혹시홍흥척스님은 원래 탑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 없어진 거로 보거나, 전혀 다른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닐까라고도 볼 수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어떤 스님이 입적하시고 나면 바로 다 탑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수철화상탑이 먼저 만들어졌을 가능성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양식적으로는 분명히 홍척국사탑이 수철화상탑보다 훨씬 더 늦게 만들어진 거라는 걸 이제 염두에 둬야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확인하려고 파헤치고 그럴 수는 없고 나중에라도 전면적으로 조사를 하다 보면 밝혀질 수도 있어서 탑주인인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한번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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