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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승탑역사순례5 : 자운대화상탑(2026.5.30)

다시산내댁 2026. 7. 12. 13:52

승탑역사순례 마지막 다섯 번째 강의는 ‘자운대화상탑(慈雲大和尙塔)입니다.

자운대화상탑은 실상사 뒤편 고려시대승탑 탑 바로 옆에 모셔져 있습니다. 석종형의 승탑으로 탑신에는 ‘자운대화상’이라는 이름과 함께 범어(梵語) 진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같은 이름과 모양의 승탑이 구례 화엄사에도 전해지며, 임진왜란 시 의승 활동과 관련된 인물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의승수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신 순천대학교 사학과 최인선교수님이 강의해 주셨습니다.


< 실상사의 간략한 역사>

강의는 실상사의 간략한 역사, 승탑의 명칭, 역사와 변천사,

그리고 자운대사에 대한 기록물들을 소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실상사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3년부터 3년간 실상사 주지를 하신 포광스님이

1920년에 쓴 실상사지(實相寺誌) 기반으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실상사는 828년에 개창하고 그 후 600여년을 지나 세조말년에 이르러 폐지되고

이로부터 200여년간 민간인들의 경작지였다. 그 폐사되고 나서는 백장암으로 옮겨 절을 운영하다

숙종 16년(1690년)에 관청에 진정을 내고 허락을 받아 침허조사가 백장사에서 옮겨 중창하였다라는 역사입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 중심으로 억불정책을 펼치긴 했지만 궁궐에는 불당을 지어 신앙을 이어가고 일반 민중들의 신앙생활은 기본 불교였습니다. 조선 건국 후 200여년이 흐른 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일반백성이나 스님들의 의병역할이 두드러 집니다. 자발적으로 국가를 위해 나섰던 스님들의 의병 즉 의승군이 큰 역할을 합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자운이라고 하는 스님도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 이순신 장군을 보좌했다는 이야기 등을 보았을 때 의승수군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상사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비껴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승탑의 구조와 변화>

승탑은 부처님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 탑신부, 상윤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화장을 통해 사리를 탑에 모셨던 것처럼 스님들도 사리를 탑에 모신 것이 승탑입니다. 우리나라 승탑은 도의선사탑을 시작으로 염거화상탑, 태안사 적인스님, 보림사 쌍봉사등 등

대부분 단단한 화강암임에도 아름다운 조각들을 새기고 있습니다.

승탑은 부처님탑과 다르게 팔각원당형으로 만들었는데

고려 후기를 지나면서는 석종형의 부도도 점점 단순해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승탑속에서 사리는 어디에 위치할까도 많이 궁금한 점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의 탑에서 사리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사실이 발견되는데

원주 흥법사의 진공대사 승탑에서 석관이 발견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인선교수님이 직접 발굴하셨던 광양 옥룡사지 승탑자리에서도 승탑 밑에서 석관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승탑은 827년에 태어나 898년에 입적하신 도선국사 승탑이었습니다.

승탑이 놓여있던 지대석을 걷어냈더니 석곽이 나오고 그 속에 90cm 정도 되는 석관이 나왔습니다.

그 석관속에서는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그 인골은 물속에 잠겨있었으며 이 몸체와 팔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는 상태였답니다.

그냥 매장도 아니고 화장은 더더욱 아니고...

당시 최인선교수님이 시도했던 것은 불교가 도입되었던 고구려시대부터 고려말까지 가능한 기록을 찾아 49기의 부도를 조사한 결과 화장을 한 경우는 16%, 매장을 한 경우는 20%, 나머지 60% 정도가 이차장(二次葬) 것으로 밝혀져 1998년 논문으로 발표하셨답니다. 2차장 즉 돌아가시면 일단 커다란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시체를 노출시키는 가매장을 하면 1~2년후에는 육탈하여 인골만 남았을 때 다시 관속에다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관이 작아도 무방한 것이지요.

광양 옥천사지 도선국사 부도탑 발굴시 발견된 석관

 

< 본격적으로 자운스님의 행적을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1. 이충무공전서에

호남의 승려들이 공(公, 이순신)을 위하여 재(齋)를 올렸는데 거행하지 않는 산사(山寺)가 없었다.

자운(慈雲)이란 스님은 공을 따라 진중에서 항상 승군(僧軍)을 이끌고 많은 공을 세웠었다.

그 는 공이 돌아가신 뒤에 정미 6백 섬으로 노량에서수륙재(水陸齋:영혼천도재)를 크게 열었고,

또 충민사(忠愍祠)에도 제물을 성대히 차려 제사를 지냈다.

옥형(玉泂)이란 사람도 승려로서 공을 위하여 군량을 이어 대어 자못 신임을 받았었는데, 이때 와서 스스로 아무런 보답도 드린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충민사로 와서 지키며 날마다 물을 뿌리고 쓸면서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 <이충무공전서>권9-부록 1, 이분(李芬) 행록(行錄1), 태학사, 2023, p.69. (재)석오문화재단 한국역사연구원 번역

2. 조계산송광사사고(史庫, 1932년)에

人物部 第六節 待價大師 도서출발 송광사 2024,p.252.)

화엄대선겸선교판윤눌(華嚴大選兼禪敎判潤訥)은

임진왜란 때에 통제사 이순신의 부장(副將)이었고,

진주성(晉州城) 함락에도 공훈을 세웠기에 국가에서 慈雲大將의 직첩(職帖)을 주고

좌수영忠武祠에서 함께 國際를 받도록 했다.

윤눌(潤訥)의 동생은 대가당(待價堂) 희옥(熙玉)대사로

나라에서 八道都僧統兼南漢都揔攝이란 직첩(職帖)을 하사하였다.

대가(待價)에게는 비능(斐能)과 급암(汲巖)이란 친동생이 있다.

비능은潭陽金城僧將을 9년간 역임하였고, 급암은笠巖僧將을 역임하였다.

『조계고승전』 권제1, 曹溪宗師待價禪師傳

3. 이덕형, <漢陰文稿> 권2.

1598년 가을 명나라 제독 유정(劉綎)과 함께 順天 洛水津을 지나가면서 조계산을 바라보았다.

이 산에 송광사가 있다고 들었다. 송광사의 승려 자운(慈雲)은 舟師(수군)의 役에 종사 하고 있었으며,

지난 해(정유년, 1597년)에는 해상에 주둔하면서 해상 방어의 方略을 함께 꾀했다고 술회하였다.

그리고 자운은 병폐(病廢)로 해를 넘기고, 지금은 圓正이 찾아왔는데 그는 자운의 문도(제자)이다.

4. 「興國寺禪堂修緝上樑記」(1780년)

삼도통제사 李公(이순신)이 해전에서 승첩을 거둔 후

자운(慈雲)과 원정(圓正) 대사가 매양 흥국사의 중영(重營, 중창)을 염두해 두었는데,

이순신의 명을 받은 군관 박춘양(朴春陽)이 일을 감독하여 흥국사의 중창을 마쳤다. ]

자운과 원정대사가 흥국사의 중창을 염원했다

5.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전라도 사림이 1799년(정조 23)에 간행

義僧慈雲玉泂 卽俗家兄弟 而爲僧于順天松廣寺 其法師乃代價堂熙玉也 (紫雲으로 표기)

의승 자운과 옥형은 속가의 형제이며, 순천 송광사의 승려로서 그 법사는 대가당 희옥이다.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 부휴의 고제(高弟)인 각성(覺性)과 희옥(熙玉)은

이른 나이에 함장(函丈, 강학하는 장소)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들면서 그 법을 듣고 그 도를 지켰다.

만력(萬曆) 기미년(1619, 광해군 11) 7월)

「全州府松廣寺開創之碑」(松廣寺 開創碑) - 崇禎丙子淸明 1636년 봄(음력 3월, 양력 4월 5일 경) :

巖(覺性)門弟 中德熙玉. 벽암각성 중창 불사 : 화엄사, 쌍계사, 송광사, 법주사 등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萬曆32年(1604)夏 能仁菴開刊移鎭于雙溪寺

覺性校, 大施主 大禪師 慈雲

공주 동학사 목조삼세불좌상 발원문(1606년) - 시주 慈雲

화엄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발원문(1634년) – 시주질 慈雲

* 자료를 요약하면

- 자운스님은 이충무공 진중에서 승군을 이끌고 많은 공을 세웠다. 충무공 사후 수륙재를 크게 열었고 충민사에서도 제사를 지냈다

- 옥형스님도 이충무공을 위해 군량을 대어 신임을 받았고, 나중에 충민사를 지켰다

- 윤눌은 이순신의 부장이었고, 국가에서 자운대장의 직첩을 주엇다

- 윤눌의 동생은 희옥대사이다. 희옥대사에게는 비능과 급암이라는 친동생이 있다

- 자운은 송광사의 승려이고 수군의 역에 종사했다. 원정은 자운의 제자이다

- 자운과 원정대사는 흥국사의 중창을 염원하였다.

- 의승 자운과 옥형은 속가의 형제이며 송광사의 승려이다. 법사는 대가당 희옥이다.

화엄사의 자운대사승탑과 실상사의 자운대사승탑이 같은 인물인지,

승군을 이끌었던 자운스님이 실상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

결론을 내기에는 관련된 자료가 너무 적습니다.

요즘은 규장각이나 불교자료 아카이브에 자료가 많이 있다는데...

관련 자료를 찾게되면 좀 더 사실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