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바람 쏘이기- 여행

흥선스님과 화요답사(2023,9,19) 팔공산 송림사와 백흥암, 거조사

다시산내댁 2023. 9. 20. 14:05

송림사. 

찻길 바로 옆에 일주문이 있는 평지의 절, 544년 명관이 중국 진나라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위해 창건했단다.

현재는 동화사의 말사라는데 동화사는 흥덕왕 7년인  832년에 중건한 법상종 사찰이다(법상종 3대사찰은 금산사,법주사).

일주문과 설법전을 지나니 단아한 5층전탑이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5층전탑은 원형으로 거의 보존되어 있고 크기도 제법 크다.

전탑의 특징은 단층기단이며 굄대가 있다.  보통 탑신1층에 감실(출입문)이 있는데 이 탑은 그것이 없다.  전탑은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으므로 우주나 탱주가 없으며  지붕돌이 곡선을 만들수 없는 직선이며 지붕돌 위와 아래 줄수가 다르다.

이 탑을 해체보수할 때 사리장엄구가 나왔다.  노반부위에서 상감기법의 청자(12세기경 추정)가 나오고 탑신2층에서는 집모양의 장엄구에 녹색고리가 달린 유리잔모양과 사리병이 발견되었단다.  예쁘다!

조선시대 건물인 대웅전은 여러가지에서 변화를 준 특이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정면5칸 옆면 3칸의 다포집인데 대부분 다포집이 팔작지붕인데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칸살이 비례가 다르다. 즉 가운데 어칸은 문짝 네개 크기, 협칸은  세개, 퇴칸은 한개의 크기다. 따라서 주간포 갯수도 다르게 배치하였다. 그리고 건물옆면에는 아예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다. 창방 위에 평방도 넣었다.

법당안에 부처님의 위치가 중간위치에 있다.  후벽뒤가 넓다

그리고 대웅전 문살이 다채롭다.

어칸에는 소슬문살(빗살의 기울기가 30도 이상 기울어진), 협칸에는 빗살과 소슬, 퇴칸에는 빗살.

그리고 열리는 문도 어칸에는 네짝중 가운데 두짝만 열리고, 협칸에는 가운데 한짝만 열리고 퇴칸은 안열리고...

문설주가 있던 자리를 알려주는 신방목이 남아 있다

그리고 명부전도 문살무늬가 살짝살짝 다르게 만들고, 퇴칸에는 아예 문이 아니라 창으로 만들었던데 .. 사진이 없네

대웅전 옆으로 있는 산령각, 응진전,삼성각등이 참하다...

그리고 송림사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기성대사 탑비

동화사 일주문 앞에 있던 마애불

드디어 백흥암에 들다. 

혜철국사가 861년(경문왕1)에 착공하였으며, 은해사의 말사이면서 초파일에만 공개하는 비구니스님이 계시는 사찰!!

원래는 잣나무가 주변에 많아 이름을 백지사라 하였다가 중종때 인종의 태를 보관하면서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으며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산의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아 운부암에서 일어나는 사서로운 구름이 용의 승천을 돕는다는 뜻이란다.

진짜 절이다 !! 

들어가는 입구부터 1.5km 정도를 걸어 들어가며 부처님 만날 준비를 한다.  옆에서 흐르는 계곡이 시원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인터넷에서 캡춰를 해다

보화루에서 바라보는 절의 풍경이 진짜 절에 왔슴을 느끼게 한다.

극락전 그리고 좌우에 심검당(선당)과 진영당(승당). 보화루까지 산지가람형의 ㅁ자형 가람배치가 전형적인 곳이다.

보화루는 화엄경을 보배로 생각한다는 화엄사상에 입각해서 이름이 붙여졌고 은해사도 누각이 보화루였다. 화엄학의 대가인 영파스님의 활동영역이어서(?) ...

극락전 건물이 아름답다. 

날렵한 처마선, 용마루의 적새, 착고와 부고, 눈썹(강수량이 많았던 남쪽동네에서 많이 보이는 구조로 낙수물이 기와로 바로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건축양식이다)이 보인다. 짜임있는 공포. 겹처마지붕.  앞면과 옆면이 3칸으로 이루어진 다포양식. 팔작지붕. 극락전 지붕과 승당,선당 지붕선과 차이가 있다.

극락전안에는 아름다운 수미단이 있다. 천장의 닷집도 용모양으로 있고... 부처님 앞의 탱화는 감로왕도.  불경 중 하나인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화승 의겸이 그렸다한다.  도난당했다가 돌아왔단다. 그리고 용모양시렁과 악착동자...

진영당의 화엄실/ 십홀방장 :홀은 한자정도 크기인 메모장을 일컷는 말/ 주련은 6개로 내용은 유마경에 나오는 문구이란다  유마거사가 병을 핑게대고 눕자 석가모니 제자 10명중 문수보살이 문병을 왔다.  팔만사천여명이 모여 토론을 하는데 ... '불이문'이란  주제로  토론.  모두 장황하게 설명할 때 문수보살은 말로 할 수 없다고 답.  유마거사는 침묵.  그래서 유마일묵.

마지막으로 거조사

조조국사 지눌이 정혜쌍수를 주장하며 불교개혁운동을 했던 곳으로 나중엔 지눌이 송광사로 옮겨 활동.

정혜쌍수는 선정과 지혜(경전)를 동시에 닦는다는 선종과 교종의 결합을 주장한 것이다.

여기서는 유명한 것이 영산전 자체와 그 속의 526 나한상!!

영산전은 5개 남은 고려시대 건축 중 하나.  2고주7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주심포건물.

고려시대 건축 특징은

주심도리 7량가구, 주심포가 배흘림기둥.외진주와 내진주 사이에 퇴목, 내진주를 연결하는 보가 항아리보, 앞뒤 살미가 날카롭다. 좌우첨차가 중가로형태. 첨차는 백제계. 주두와 소두가 직선이고 헛첨차가 있다.  도리밑을 받쳐주는 장혀, 반장혀, 종도리를 받치는 대공을 보강하는 소슬합장(사람인자 모양),  연등천장, 개방된 간결한 살창설치(해인사처럼 경판을 보존하는 전각이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