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풍경

가야 고분군-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을 찾다 (2025,7,29)

다시산내댁 2025. 7. 30. 14:37

뜨거운 날,

갑자기,

그냥

두락리,유곡리 가야고분군을 가다.

간 김에 운봉 백도대간에서 전시한다는 지리산자생곤충전도 보고...

 

두락리 유곡리 고분군은 집에서 20여분.  홍보관이 있어 들러보고 막상 고분군은 너무 뜨거워 멀리서만 보다. 

가을 같은 날 걷기 좋을 것 같다 ~

 

가야의 역사는 약 2000년 전 한반도 남쪽 해안지역에서 시작되어 500여 년 지속된다. 즉 1세기에서 6세기.

전체적으로는 22개 국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발견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은 7개 고분군.

가야권은 연맹이라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주변국가와 교역도 하며 고구려,백제,신라와 겨루기도 한다.

 

1세기 부터 시작된 전기가야는

동래, 김해,창원,마산,함안,고성,사천에 이르는 남해안 지역에서 

바닷길을 통해 전해진 이웃 선진문화의 영향으로 소국 정치체를 이루며 번성하였다.

특히 중요한 기반은 해상교역과 철 생산시스템의 구축이 있었으나 전기가야는 4세기말에서 5세기 초에 몰락하게 된다.

5세기 중반에 시작된 후기가야는

고령의 대가야국을 중심으로 합천,거창,산청,하동,의령,함안,고성등 경상지역과 남원,장수,광양,순천,여수등 호남지역이었다.

가락국이 대가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철생산이 기반이 되었으며,  대가야 양식의 토기가 확산되었다. 

5세기 후반 전성기에는 22개으 소국으로 형성되기도 했다.

6세기초 대가야는 가야 북부의  대부분을 통괄하였으나 전역을 통합하지는 못하고 분열했다.  이후 김해의 금관국이 532년 신라에 병합되었고, 562년 고령의 대가야국이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록된 가야연맹 7개 고분군

1. 김해 대성동 고분군 -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

2. 함안 말이산 고분군 -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

3. 합천 옥전 고분군

4.고령 지산동 고분군 - 대가야를 대표

5. 고성 송학동 고분군 - 소가야의 중심지

6.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7. 창녕 고동과 송현동 고분군 -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

 

 

운봉고원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살기 좋은 곳 열곳 인 십승지지 중 하나로 뽑혔으며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운봉이 없으면 호남도 없다"라고 했을 정도로 예로부터 정치 국방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또한 운봉고원은 백두대간 동쪽의 고원지대로 남강과 섬진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위치도 동쪽으로는 팔량치를 넘어 함양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여원치로 내려오면 남원, 치재를 지나 임실과 장수로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동서문화교류의 관문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이곳의 가야세력은 신라와 백제를 이어주는 역할도 했슴을 보여준다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지리산 줄기인 연비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5세기~6세기에 조성되었으며 40여기의 붕분이 분포한다. 32호 분에서 청동거울, 금동신발이 가야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출토품들!!

칼손잡이 조각

 

 

 

 

 

 

 

매장순서를 예측한 영상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