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스님과 답사.
산청지역에서 유의해서 볼 점을 뽑아 주셨다
1. 구형왕릉 : 가야문명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주변 지역이름이 왕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1. 단성지역 :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처음 심은 지역이다. 목화재배는 고려말 서민의복이 비단이나 삼베뿐이 없던 시절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1. 단성향교 철종13년(1862년)에 일어난 임술민란의 출발지이다.
조선말기에 이르러 삼정(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해지고, 상품화폐경제가 늘어나면서 (진주의 경우 6%의 지주가 44%의 농지를 소유하고, 63%의 농민이 겨우 18%의 농지를 지녔다) 농민층의 분해가 현저했다. 또한 신분제도도 변동이 심해 울산의 경우 절반이상이 양반신분으로 호적에 올라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살 기 어려웠던 농민들은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단성현에서 시작된 항쟁은 진주로 바로 퍼지고 1~2년간 전국 72개 고을에서 발생하였다. 이는 주로 경상, 전라, 충청 삼남지역에서 발생하였는데 나라에서는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고 삼정을 바로 잡자는 의미에서 '삼정이정청'이 만들어지고 환곡폐지를 약속했으나 유야무야 ..
1. 남명 조식(1501~1572)
합천 출신이지만 아버지의 벼슬 따라 서울로 가서 공부하고 자라났다.
대곡 성운과 만남도 있었고(후 성운은 보은 속리산으로 냑향), 숙부가 아버지에 이어 조광조 일당으로 몰려 숙청되자 처가인 김해로 낙향하였다. 이 때가 삼십세. 김해에서 신어산 자락에 산해정을 지어 학문에 전념하다가 마흔여덟살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뇌룡정을 지어 후학을 양성. 61세에는 지리산 덕산동에 산천재를 짓고 인재를 양성하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적극적인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경상좌도에 퇴계이황, 그리고 경상우도에 남명조식으로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관련 기대승과 사단칠정론 논쟁이 유명하다. 스스로는 수행의 핵심의 경과 의를 중시하고 성성자라고 불리던 방울과 검을 지니고 다녔다. 실천을 중시하여 많은 제자들이 의병활동을 하였다. 유명한 제자로 덕계 오건, 내암 정인홍, 수당 최현경, 동강 김의홍, 한강 정구, 허목등이 있고, 의병장을 지낸 곽재우, 정인홍등 있다
1. 단속사지
단성향교
남명조식선생 무덤
산천재의 남명매
덕천사원. 사당을 들어가보기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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